지속가능성과 건강이라는 글로벌 키워드가 떠오르면서, 세계 곳곳에서 식생활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완전한 채식주의가 아닌, 채식을 기반으로 하되 유연하게 동물성 식품을 병행하는 식습관인 플렉시테리언이 있다. 단순한 식단의 변화라기보다는, 국가 차원의 정책과 교육,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어우러진 흐름이다. 이 글에서는 세계 주요 국가들이 플렉시테리언 혹은 유사한 식생활 방식 확산을 위해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그것이 사회와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1. 유럽 : 제도와 소비가 함께 움직이는 플렉시테리언 선도 지역
유럽은 채식 및 플렉시테리언 식문화 확산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지역 중 하나다. 유럽연합차원에서의 지속가능한 식품 체계 구축 전략이 국가별 정책에 반영되면서, 정부가 직접 나서 육류 소비를 줄이고 식물성 식품을 권장하는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2023년 연방 식품농업부가 공식적으로 채식 및 플렉시테리언 식단을 권장하는 식생활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지침에서는 전체 식단에서 육류의 비중을 주당 300~600g으로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대신 콩류, 견과류, 통곡물 등의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독일 내 학교 급식과 공공기관 식단에서도 점차 채식 선택지가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플렉시테리언 실천의 현실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2019년부터 모든 공립 학교에서 최소 주 1회 채식 급식을 의무화했다. 이는 아이들의 식습관 개선은 물론, 지속가능한 농업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려는 전략적 접근으로 평가된다. 영국 역시 2020년 이후 지속가능한 식생활을 촉진하는 내셔널 푸드 스트래티지를 통해, 식물성 식품 소비 확대와 가공육 섭취 제한을 목표로 한 종합 대책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유럽은 정책, 교육, 소비자의 인식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유연한 채식 생활이 더 이상 소수의 선택이 아닌 다수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 북미 : 시장의 움직임이 정책을 이끄는 구조
북미에서는 정부의 정책적 개입보다는 시장 주도에 의한 변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미국은 플렉시테리언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한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해 식품업계는 식물성 단백질 제품의 다양화와 접근성 개선에 나서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2020년부터 식물 기반 식단의 건강상 이점을 반영하여 식생활 지침을 업데이트했으며, 해당 지침에서는 붉은 고기 섭취를 줄이고 식물성 식품의 섭취를 늘릴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강제적이거나 공공영역에서의 정책 시행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행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변화는 민간 기업과 소비자 트렌드에서 비롯되고 있다.
캐나다는 상대적으로 진일보한 채식 지침을 가진 국가 중 하나이다. 2019년 개정된 캐나다 식생활 지침은 유제품과 육류 중심의 기존 식단 구조에서 벗어나, 식물성 단백질을 주요 식품군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이 지침에 따라 병원, 학교, 군부대 등 공공기관의 식단 개편을 추진 중이며, 플렉시테리언 실천을 위한 교육 자료 또한 전국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이처럼 북미에서는 강제성보다는 자율성과 트렌드에 기반한 변화가 주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 증가와 함께 식생활의 중심이 점차 플렉시테리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3. 아시아 :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유연한 식문화
아시아 국가들은 오랜 식문화 속에 이미 유사한 형태의 식습관이 존재해왔기 때문에, 플렉시테리언 개념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불교 문화의 영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채식이 현대적인 플렉시테리언 트렌드와 결합되며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플렉시테리언 정책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식품업계에서는 빠르게 식물성 대체식품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인의 주 1회 이상 채식 실천율은 약 20%를 넘어섰으며, 대형 프랜차이즈 및 마트에서도 비건 및 플렉시테리언 전용 식품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환경부와 식약처는 최근 지속가능한 식단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향후 정책 도입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생선과 채소가 중심이 된 식단을 유지해온 국가로, 플렉시테리언 식단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 진입 이후 육류 소비가 증가하면서 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정부와 민간의 협업으로 플랜트 기반 식품의 품질 향상과 공급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중국은 도시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그린 푸드, 저탄소 식단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비건 식품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일부 지방정부는 공공기관 급식에 식물성 식단을 도입하려는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대기오염과 기후 위기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4. 남미 및 기타 국가들 :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접근
남미 국가들 중 브라질은 독특한 식문화와 더불어 정부 차원의 식생활 가이드라인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례이다. 브라질 보건부는 2014년 건강한 식생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자연 그대로의 식품 섭취를 강조하고 육류와 가공식품 섭취를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는 단순한 영양 권장 기준을 넘어, 음식의 생산 방식과 환경 영향까지 고려한 종합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또한 지속가능한 식단을 주제로 한 정부 보고서를 통해, 육류 중심의 식습관에서 식물성 식품 중심으로의 전환을 권고하고 있으며, 특히 가축 사육에 따른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국민 참여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은 아직까지 식생활 정책에서 채식이나 플렉시테리언과 관련한 구조적 접근은 미비하지만, 기후 위기와 식량 안보 문제가 심화되면서 국제기구와 협력한 지속가능 식단 전환 시도가 늘고 있다. 향후 이들 지역에서도 환경과 건강을 고려한 식생활 전환이 주요 의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정책은 식탁을 바꾼다.
플렉시테리언 식단은 더 이상 개인의 취향이나 윤리적 선택만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건강 정책이며, 환경 전략이며, 교육과 산업 구조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사회 변화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다.
국가별 차이는 있으나, 세계는 분명히 식생활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유럽의 제도 중심 접근, 북미의 소비자 주도 변화, 아시아의 문화적 수용성, 남미의 통합적 정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플렉시테리언을 실현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전환이 단기적 유행을 넘어, 일상과 구조 속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식탁 위의 변화는 결국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모습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