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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통한 시각화로 생명을 그리는 법

by misolsira 2025. 8. 9.

현대 과학은 데이터를 넘어선 형상을 요구한다. 생명의 본질을 눈으로 보고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시각화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하지만 그 시각화가 단순한 설명을 넘어서 예술이 되는 순간이 있다. 생물학적 시각화가 어떻게 예술적 감흥을 자극하며, 과학의 경계를 넓혀가는지를 살펴본다. 이미지 한 장이 과학과 예술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교차점에서 새로운 사고를 발견하게 된다.

 

과학을 통한 시각화로 생명을 그리는 법
과학을 통한 시각화로 생명을 그리는 법

 

세포에서 예술적 장면을 보는 법 (생명 과학 시각화의 서사성)

현미경 너머로 본 세포는 과학자에겐 정보의 조각들이지만, 예술가에겐 하나의 풍경이다. 생명과학 시각화는 단순한 관찰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복잡성과 구조,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해석한 '서사적 이미지'다. 대표적으로 형광 현미경을 통해 찍힌 세포 내부 구조는 빛과 색, 깊이의 조화를 통해 세포의 기능과 상호작용을 드러낸다. 단순히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정교한 '행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극적이다.

특히 단백질의 상호작용이나 세포 분열 장면은 시간이 정지된 듯한 정적 이미지 안에 역동성을 담고 있다. 이런 장면은 과학적 탐구의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서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마치 거대한 우주가 축소되어 있는 듯한 세포의 풍경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과학 이미지가 정보의 전달을 넘어서 감각의 자극을 목표로 삼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각화의 기술 발전과 함께 일어났다. 고해상도 현미경과 인공지능 기반의 영상 분석 기술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세포 내부의 움직임, 분자 간 상호작용, 미세구조의 형상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게 했다. 더 나아가 이를 가시화할 때 단순한 흑백 사진이 아니라, 색채를 활용한 해석이 개입되면서 예술적 장면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동일한 단백질 구조를 표현할 때에도 시각화 방식에 따라 강렬한 대비의 추상화처럼 느껴질 수 있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자연 풍경처럼 그려질 수도 있다.

여기에는 과학자들의 미적 감각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여러 생명과학 논문에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예술 전공자들이 보정하거나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단백질의 3D 구조 모델링, 세포 배열의 공간 시각화 등은 디자인 감각 없이 전달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형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정확성을 유지하며 정보를 압축하고, 예술가는 감각적 요소를 부여하며 직관을 도운다. 이 협업은 과학적 이미지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결국 생명과학의 시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갖는다.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 세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아름답고 경이롭다고 '느끼게' 된다. 과학이 정량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면, 시각화는 그 사실에 정서적 온도를 입히는 작업이다. 이런 점에서 세포 이미지는 단순한 설명 자료가 아닌, 과학적 시와도 같다.

 

데이터 시각화의 예술적 전환

데이터는 원래 무색무취다. 숫자와 기호로 이루어진 정보의 덩어리는 아무런 감정도 전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순간, 즉 색과 형태로 바꾸는 순간 그것은 감각의 대상으로 재탄생한다. 생명과학에서 이 데이터 시각화는 그 자체로 예술의 가능성을 품는다. 특히 유전체 분석, 단백질 상호작용 네트워크, 생물종 간 계통도를 표현할 때 데이터의 복잡성이 크기 때문에 시각화의 방식이 그 메시지를 좌우한다.

예를 들어, 인간 유전체를 기반으로 한 히트맵은 단순한 색상의 배열처럼 보이지만, 그 색의 농도, 위치, 패턴은 유전자의 발현 정도나 기능적 연관성을 나타낸다. 이를 시각화할 때 어떤 색을 선택하느냐, 어떤 공간 배열을 따르느냐에 따라 정보의 직관성이 크게 달라진다. 이런 작업은 결국 디자인의 영역이자,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다. 여기에 예술적 감각이 개입하면 데이터는 추상화된 풍경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정한 리듬을 갖춘 패턴 예술로 읽히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이언스 아트 혹은 사이언스 비주얼리제이션이라는 장르가 태동했다. 실제로 엠아이티 미디어랩, 하버드, 구글 딥마인드 등은 데이터 시각화를 디자인 팀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를 보이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느껴지게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전시회에 걸리는 예술 작품처럼 수용되기도 한다. 생명의 네트워크를 선과 점으로 표현한 인터랙티브 설치물, 유전자 염기서열의 반복 패턴을 소리와 색으로 번역한 멀티미디어 작품 등은 그 대표적 예다.

시각화의 미학은 과학적 정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더 깊은 정서적 울림을 가능케 한다. 한 예로, 파킨슨병 환자의 신경망을 MRI 데이터로 시각화한 작업이 있다. 그 결과물은 복잡하게 얽힌 뉴런의 흐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경계의 붕괴와 연결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이때 이미지 속 '아름다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감의 매개로 작동한다.

데이터 시각화가 예술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가이다. 정보는 머리로만 이해할 수 있지만, 시각화는 감정을 열어젖힌다. 그것이 바로 과학 이미지가 예술의 문턱을 넘는 순간이며,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이미지, 존재를 증명하다 : 시각화가 만드는 과학적 실재

시각화는 종종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게 만든다. 특히 생명과학에서 시각화된 이미지는 관찰 불가능한 세계를 가시화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바이러스 입자, DNA의 구조, 단백질 결합 상태 등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대상이지만, 그 시각화는 실체에 대한 직관을 제공하며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과학적 실재성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시각적 설득력을 갖춘 일종의 창조 행위에 가깝다.

예를 들어 DNA 이중 나선 구조를 처음 시각화한 이후, 생명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 정보가 나선 형태로 저장된다는 이 발견은 단순한 구조 설명을 넘어서 생명의 패턴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졌다. 이후 단백질 결합 방식, 리보솜의 기능, 미토콘드리아의 전자전달 체계 등도 모두 시각화를 통해 개념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미지가 이해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 이미지들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거의 모든 시각화는 선택과 해석, 강조의 결과다. 예를 들어, 세포 내부 구조를 시각화할 때도 불필요한 부분은 제거하고, 중요한 구조를 부각시키며, 색을 입히고 배경을 조정한다. 이런 선택의 과정은 예술에서의 구성 원리와 흡사하다. 따라서 과학적 시각화는 객관적 사실에 기반을 두되, 미학적 감각과 해석이 결합된 복합적 산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각화는 보여주는 과학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과학이 되기도 한다. 시각화된 이미지가 실험 결과를 재구성하고, 그 결과를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이미지는 결과가 아니라 새로운 해석의 창이다. 이는 과학적 방법론의 영역에서조차 점점 더 시각적 사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대중과의 소통에서도 시각화는 핵심 역할을 한다. 과학이 대중에게 직접 전달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 복잡성과 추상성 때문이다. 그러나 정교하게 시각화된 이미지 한 장은, 글 몇 페이지보다 빠르게 이해를 끌어낸다. 특히 팬데믹 시기에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이미지화는, 그 실체가 눈앞에 있는 듯한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의 인식을 형성했다.

과학 시각화는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인식의 방식이며, 존재의 증거이고, 지식의 해석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술과 과학은 서로를 보완하며,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다. 이미지 한 장으로 세상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설명이 아닌 공감의 과학이다.

 

이미지의 언어로 과학을 말하다

과학은 이성의 영역이지만, 시각화는 감성의 문을 연다. 생명과학의 복잡한 세계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일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과 경험의 통로다. 세포의 움직임, 유전자의 패턴, 데이터의 흐름은 예술적 감각과 만나 생명에 대한 새로운 감흥을 자아낸다. 과학이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결국 인간의 이해가 감각과 정서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아는가"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떻게 보여주는가", 그리고 "그 이미지를 어떻게 느끼는가"가 과학의 새로운 언어가 되어간다. 시각화는 이제 과학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과학 자체의 일부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말없이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