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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에서 시작된 변화, 공공기관의 비건 도입 사례

by misolsira 2025. 4. 15.

기후 변화, 건강 문제, 그리고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비건이라는 식생활 방식이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 시스템 속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교육기관, 병원, 군대, 공공 청사 등의 공공기관에서는 단순한 권장 수준을 넘어 식단 구성 자체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학교 급식의 변화는 가장 대표적이며, 한 세대의 식습관과 인식을 장기적으로 바꾸는 시발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교 급식에서 시작된 변화, 공공기관의 비건 도입 사례
학교 급식에서 시작된 변화, 공공기관의 비건 도입 사례

 

학교 급식을 중심으로 시작된 비건 식단의 확산 흐름과 함께, 각국의 공공기관에서 추진 중인 주요 사례들을 통해 그 가능성과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1. 유럽, 급식에서 정책으로 제도화된 비건 식단

유럽은 전통적으로 공공정책과 식생활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역이며, 비건 혹은 채식 중심 식단의 공공기관 도입에 있어 가장 선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프랑스다. 프랑스 정부는 2019년부터 모든 공립학교에서 최소 주 1회 이상 채식 급식을 의무화하였다. 이는 단순한 건강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농업 구조의 지속가능성, 온실가스 저감, 아이들의 장기적인 식습관 형성을 고려한 종합적인 전략의 일환이다. 프랑스의 이러한 정책은 이후 지방 자치단체 차원에서 완전 비건 급식 선택제로 확대되어, 일부 학교에서는 매일 비건 급식 옵션을 제공하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영국의 경우에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런던 시청은 2023년부터 시청 내부 회의 및 공식 행사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모두 식물 기반 메뉴로 전환하였다. 이는 지방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식단 전환을 공식 채택한 사례로, 향후 영국 내 다른 시 군 단위 공공기관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독일 역시 2023년 연방 정부 식생활 지침을 개정하면서, 공공기관 식단에서의 육류 비중을 명확하게 제한하였다. 독일 환경부는 자체 청사 내 급식에서 소고기 및 돼지고기를 제외하고, 식물성 단백질 기반 메뉴를 중심으로 구성한 바 있으며, 이를 타 부처로 확대하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유럽의 사례들은 비건 식단이 단순히 개인의 윤리적 선택을 넘어서, 국가 정책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학교를 포함한 공공기관의 급식은 사회 전체 식생활 변화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북미, 자율성과 다양성 사이 선택지 확대를 통한 접근

북미에서는 비건 식단 도입이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지역 교육청과 공공기관의 자율성에 의해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의 비건 의무 급식과 같은 규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를 중심으로 점차 비건 혹은 식물 기반 급식의 선택권을 제공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뉴욕시는 2022년부터 고기 없는 월요일과 식물 기반 금요일 캠페인을 통해, 공립학교 급식 메뉴를 비건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에 더해, 2023년에는 초 중 고등학교 전체에서 비건 옵션을 매일 제공하는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도입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학생들의 영양 불균형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도시 차원의 탄소 발자국 감축 목표와도 연계되어 추진되고 있다.

 

캐나다는 2019년 개정된 캐나다 식생활 가이드를 바탕으로 공공기관 식단 구성에도 식물 기반 식품 중심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일부 주정부에서는 병원과 대학 구내식당 등에서 지속가능한 식단 전환을 위한 예산 지원과 교육 자료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특히 토론토와 밴쿠버 지역은 비건 및 채식 선택지를 확대하는 공공급식 모델을 선도하고 있다.
북미의 경우, 강제적인 제도화보다는 선택지 제공과 정보 제공이라는 접근 방식을 통해 학생, 환자, 공무원 개개인의 인식과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인종과 식문화가 공존하는 북미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3. 아시아,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에서 조심스럽게 확산 중

아시아 지역은 오랜 전통 식문화 속에 이미 채식에 가까운 식단 요소들이 존재해 왔지만, 공공기관 차원에서의 비건 도입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다만 최근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한 식량 정책, 시민 건강 이슈 등이 부상하면서 점차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20년 이후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을 중심으로 채식 선택 급식제가 시범 도입되었다. 서울, 경기, 전북 지역에서 학교 급식에 채식 혹은 비건 식단을 도입하거나,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제공하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2023년에는 서울시교육청이 채식 급식 확대를 공식 과제로 선정하였다. 또한 군대나 공공기관 급식에서도 대체육 제품을 일부 활용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은 식품 안전 및 영양 균형을 중요시하는 전통적 교육 문화 속에서, 최근 식물 기반 급식이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특히 환경 문제와 연결된 에코 스쿨 푸드 정책 일환으로 일부 도시에서 식물성 식단이 학교 및 관공서 식사에 시범 적용되고 있다. 일본의 대형 도시에서는 대학 구내식당에서 비건 런치와 같은 메뉴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며 학생과 교직원의 호응을 얻고 있다.
중국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비건 및 대체육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으나, 공공기관 차원의 식단 전환은 아직 제한적인 수준이다. 다만, 일부 정부 부처가 기후변화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저탄소 식단을 공공 식사에서 시범 적용하고 있어, 향후 정책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4. 비건 급식, 왜 중요한가 의미와 과제

공공기관에서 비건 식단을 도입하는 것은 단순한 유행이나 윤리적 선택을 넘어, 구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이는 첫째, 지속가능한 식량 시스템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식품 소비는 온실가스 배출, 수자원 고갈, 생물 다양성 훼손에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건 혹은 식물 기반 식단으로의 전환은 환경 측면에서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 중 하나로 평가된다.
둘째, 사회적 약자와의 연관성이다. 건강 불균형, 경제적 소외, 식품 접근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기관 급식은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채소, 곡물, 콩류 중심의 식단은 육류 중심 식단보다 경제적이며 영양 면에서도 균형 잡힌 구성이 가능하다.
셋째, 교육적 측면에서의 효과이다. 특히 학교에서의 급식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식물 기반 식단을 접하게 하며, 장기적으로 건강한 식습관 형성과 환경 감수성 함양에 기여한다. 아이들이 매일 접하는 식탁 위의 변화는 단기적인 정책을 넘어 세대 간 지속 가능한 사고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과제도 존재한다. 영양 균형 확보, 조리 인력의 교육, 식재료 수급 안정화 등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또한 문화적 거부감, 부모의 반발, 제도화 과정에서의 정치적 논쟁 등도 공공기관의 비건 식단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식탁 위의 정책, 미래를 바꾸다.
공공기관, 특히 학교에서 시작된 비건 식단 도입은 단순한 메뉴의 변화를 넘어선다. 그것은 기후위기 대응, 건강 불평등 해소, 식문화 전환을 모두 포괄하는 복합적 정책이자,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구성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이제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서, 공동체의 기준으로서 비건 식단의 가능성을 논의할 시점이다. 공공기관에서의 시도는 더디고 제한적일 수 있으나, 그것이 만들어낼 변화의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다. 식탁에서 시작된 변화가 교실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